2015년 2월 28일 토요일
빌립보서 1장 19절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 예수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provision of the Spirit of Jesus christ))
"왜냐하면 여러분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으로, 이러한 일이 결국에는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을 나는 알기 때문입니다.
19 οἶδα γὰρ ὅτι τοῦτό μοι ἀποβήσεται εἰς σωτηρίαν διὰ τῆς ὑμῶν δεήσεως καὶ ἐπιχορηγίας τοῦ πνεύματ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넘치는 공급 : ἐπιχορηγίας (에피ㅎ코레기아스)
'넘치는 공급'이라는 말은 단순히 헬라어를 직역한 것 '공급'에 용어설명상 '넘치는'이라는 수식어를 더한 것이다. 원문상의 단어 '에피코레기아스'는 그리스시대 유행했던 악극단의 단장이 소속 단원들의 모든 필요공급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당시 그리스 연극상 가면을 쓰고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자들과, 무대 바로 아래 악극을 연주하는 연주자들로 구성되었는데, 그 악극을 이끄는 단장은 악극단원들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였다. 일단 어떤 사람이 악극단에 가입을 하면, 더이상 생활의 필요를 염려할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악극단장이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영의 공급은 사실상 넘치는 공급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원문에 가깝게 된다.
사도바울이 그리스도를 살고, 많은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를 확대할 수 있었던 힘의 원동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바로 '그 영' 인데, 그 영은 모든것을 포함한 것이다. 이 영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부족함이 없고 항상 넘침으로 충만한 것이다. 부가적으로 그럼 이 예수그리스도의 영은 무엇을 포함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영은 요한복음 7장 39절에 언급된 그 영이다. 요한복음 7장 39절 "이것은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받을 그 영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꼐서 아직 영광그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 그 영은 주님께서 육체가 되시기 전의 하나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잉태와 출생과 관련하여 성령이시며, 인성과 십자가 아래서 인간 생활을 하신 예수의 영이며, 죽음과 부활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영이며, 이제 이 모든것을 포함하신 그 영이 되셨다. 그러므로 그영 안에는 신성,인성,죽음,부활,생명 모든것이 복합된 영이다. 마치 출애굽기 30장 23절에서 25절까지에 나오는 복합적인 관유와 같은 것이다. "너는 또 가장 좋은 향료를 가져오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 향기로운 육계를 그 절반인 이백오십세겔, 향기로운 창포 이백오십 세겔,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에 따라 가져오고 올리브 기름 한 힌도 가져오너라. 너는 그것들로 바르는 거룩한 기름을 만들되, 향 만드는 사람의 제조법에 따라 잘 복합된 향기로운 관유를 만들어라. 이것이 바르는 거룩한 기름이 될 것이다." 다양한 성분의 약품이 올리브ㅜ 기름 한 힌에 더해져 거룩한 관유가 된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모든 성분이 이 그 영안에 녹아 있으므로, 이제 우리는 그 영을 접할때 모든필요를 공급받게 된다. 사도 바울이 사도로써 받은 고난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가 맞은 매의 댓수와 돌에 맞은 횟수, 감옥에 같힌 횟수는 사도행전을 보면 잘 알수 있다. (단, 이 기록은 기록된 것일뿐, 실상은 그 이상이 것이다) 바울이 이러한 위협과 고난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많은 영적 유산들을 남길 수 있었던 해답은 바로 이 '그 영'의 넘치는 공급이었다. 당신은 힘들다고 말하지 말라. 당신은 지쳤다고 말하지 말라. 당신은 가망없다고 말하지 말라. 단지 이 한포의 약을 먹으면 모든것이 해결된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영의 넘치는 공급이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궁핍하지 않았고, 절대로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유했으며, 넘쳤으며, 심지어 남을 공급했다. 바울이 천연적으로 강해서 이것을 인내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오히려 바울은 그 영을 의지 했다. 그러므로 당신이 주님의 인성과,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기 원한다면, 반드시 그 영을 따라 살고 행해야 한다.
(ἐπιχορηγίας)와 동일한 단어가 쓰인 다른 성경구절을 참고적으로 소개한다.
에베소서 4장 16절
"온몸은 그분에게서 나온 그 풍성한 공급을 해 주는 각 마디를 통하여, 그리고 각 지체가 분량에 따라 기능을 발휘하는 것을 통하여 , 함께 결합되고 함께 짜입니다. 그래서 몸이 자람으로써 사랑 안에서 스스로 건축되는 것입니다
Ephesians 4:16 ἐξ οὗ πᾶν τὸ σῶμα συναρμολογούμενον καὶ συνβιβαζόμενον διὰ πάσης ἁφῆς τῆς ἐπιχορηγίας κατ’ ἐνέργειαν ἐν μέτρῳ ἑνὸς ἑκάστου μέρους τὴν αὔξησιν τοῦ σώματος ποιεῖται εἰς οἰκοδομὴν αὐτοῦ ἐν ἀγάπῃ.
2015년 2월 26일 목요일
로마서 8장 28절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룸)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함으로써 선이 이루어 진다는 것을 압니다."
2015년 2월 25일 수요일
요한복음 6장 63절
"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 영(1)이십니다. 육체(2)는 무익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3)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to pneuma(1) estin to zwopoioun, h sarx(2) ouk wfelei ouden: ta rhmata(3) a egw lelalhka umin pneuma estin kai zwh estin.
(1) 그영 pneuma(프뉴마:공기)
육체가 되신 주 예수님은 부활후에, 또한 부활을 통하여 고린도 전서 15장 45절에 분명히 언급된 것과 같이 생명을 주시는 그 영이 되셨다. 그분은 생명 주시는 영으로서, 우리에게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실 수 있으시다. 우리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구주로 받아들일때, 생명을 주시는 그 영은 우리 안에 들어오시어 영원한 생명을 분배하신다. 우리는 주 예수님을 받아들이지만, 우리가 얻는 분은 생명을 주시는 그 영이시다.
(2) 육체 sarx(샤륵스)
여기서의 육체는 물질적인 몸의 살을 가리킨다. 주님께서 '내가 줄 떡은 곧 내 살인데(요6:51절) 라고 하자 그 다음구절에서 유대인들은 "어떻게 이 사람이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어려운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이 절에서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셔서 먹게 하려 하신 것은 자기 육체의 몸의 살이 아니라고 설명하셨다. 육체인 그 살은 무익하다. 결국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신 것은 부활안에 계신 주님 자신이신 생명을 주시는 그 영이었다.
(3) 말 rhmata(ㅎ레마타:즉각적인 말씀)
여기서의 말씀은 즉각적인 말씀, 지금 하시는 말씀을 가리킨다. 이것은 항상 있는 말씀을 가리키는 '로고스'(요1:1) 과는 다르다. 여기서 말씀은 그 영 다음에 나온다. 그 영은 살아 있고 실재하지만, 매우 비밀하고 만질 수 없고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말씀은 구체적이다. 먼저 주님은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주님께서 '그 영'이 되실 것임을 언급하셨다. 그 후에 주님은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명의 영의 체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주님은 부활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이시며, 이 영은 그분의 말씀 안에 체현되신다. 우리가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그분의 말씀을 받을 때에[ 우리는 생명이신 그 영을 얻는다.
2015년 2월 23일 월요일
요한일서 2장 15절(세상은 아버지를 거스른다)
"세상(1)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구라도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2)이 없습니다."
(1)세상
한국어 성경에 '세상'으로 번역된 원 헬라어 단어의 분류
1)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체계인 물질적인 우주 : 마25:43/요17:15/행17:24/엡1:4/계13:8
2) 사탄이 부패시키고 강탈하여 그의 악한 세상 체계의 구성원들이 된 타락한 인류: 요1:29/3:16/롬5:12
3) 단장하는 것, 장식품: 벧전 3:3
4) 하나님의 대적 사탄이 세운 질서 있게 만든 체계: 요일 2:15/요15:19/요17:14/약4:4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셔서 땅에 살게 하신 것은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수 사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을 강탈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타락한 본성을 통하여 그들을 정욕과 쾌락과 일에 빠지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음식과 의복과 주택과 교통수단과 같은 생활필수품에도 빠지게 하고, 종교와 문화와 교육과 산업과 상업과 오락 등과 같은 것으로 사람들을 체계화하여, 이 땅 위에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상 체계를 형성했다.
이러한 사탄적인 체계 전체가 악한 자 안에 놓여있다. 이러한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악한 자를 이기는 근거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것은 악한 자에게 우리를 패배시키고 점유하도록 근거를 주는 것이다.
(2)아버지에 대한 사랑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아버지의 사랑이 아버지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 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 사랑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는데, 이것은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또한 우리가 누린 그 사랑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은 아버지를 거스르고, 마귀는 아들을 거스르며(요일 3:8), 육체는 그 영을 거스른다.(갈 5:17)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쾌락이나 도덕적 부패는 악이라 생각하면서도,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 의복, 주택, 교통수단인 차 등을 관심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것을 사탄이 만든 세상체계임을 밝힌다. 우리가 생활 필수품을 이용하는 것은 유용하다. 하지만 이것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즉시로 이것은 아버지의 사랑에서 빗나가게 하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앗아가 버린다.(누구든지 두주인을 섬길수 없습니다.)마치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뱀의 꼬리를 잡자 이것이 지팡이로 변한것처럼 세상을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잡으면 유용한 도움이 되지만, 뱀의 머리를 잡는순간 뱀에게 물리게 되는 것처럼, 세상이란 도구를 우리의 머리로 취하게 되는 즉시 세상에 빠지고 죄에 빠져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2015년 2월 22일 일요일
사도행전 20장 13절 ~ 38절 (바울의 마지막으로 영적 자녀들에게 전한말)
2015년 2월 21일 토요일
유월절의 참된의미 (pass over)
유월절이란..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구출되기전날 밤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집의 문설주에 바르고 양의 고기와 내장, 쓴마물등을 먹는 실행이 시작이 되었으며, 이후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이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신것에 따라 지금까지도 이스라엘민족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는 큰 절기이다. 또한 유월절을 시작으로 7일간 무교절이 지속되는데 이는 누룩이 없는 순수한 떡을 먹는 실행이며, 첫날인 유월절과 무교절의 마지막날에는 어린양을 잡고 떡을 만드는 일 외에는 어떤 일도 하는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유월절과 관련된 근거구절들
출애굽기 12:14
"이날은 너희에게 기념일이 되리니, 너희는 이 날을 여호와께 명절로 지내되 영구한 율례로 삼아 대대로 명절로 지내야 한다."
요한복음 1:29
"보십시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요한복음 1:36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는 것을 주의깊게 보고, "보십시오,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라고 하자."
베드로전서 1:19-20
19 "흠이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와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입니다."
20 "하나님은 이 그리스도를 창세전에 미리 알고 계셨으나, 모든 시대의 마지막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내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창세때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땅에 거하는 사람들은..."
요한계시록 22:1
"또 그 천사는 나에게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와 그 서의 길 가운데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마가복음 14장, 누가복음 22장, 요한복음에는 주님의 상과 관련된 상세한 기록이 없음.
유월절에 관한 기록은 출애굽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진다. 사실 성경에서 유월절과 관련된 사상은 창세기 이전부터라고 할수 있는데 그 이유는 요한계시록 13장 8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창세때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기록 때문이다. 사실 유월절에 잡혀진 어린양은 신약에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이므로 구약에서의 유월절은 신약까지 계속되며 계시록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유월절은 구약에서 지켜야 했던 절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약까지 지속되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평생토록 지속되는 잔치인 셈이다.
이 유월절은 제정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마지막 재앙을 주시기 전날,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에 바르게 했는데, 문설주에 피가 발라진 집에는 죽음의 천사가 "유월"하여 장자의 죽음을 피할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정을 구분하지 못하셔서 그 표식을 바르도록 하셨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즉, 유월절은 하나의 예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구약은 예표요, 신약은 실재이다. 즉 구약은 그림자와 같고, 그 실체는 신약인 것이다. 구약의 유월절에서 나타나는 모든 실행과 긍적적인 것들은, 보통 신약에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이다. 따라서 유월절의 어린양은 그리스도를 나타나고 그분이 흘린 피를 통해 우리가 구속을 얻고, 즉 그와 동시에 어린양의 피가 칠해진 사람, 곧 구속받은 믿는이들에게는 영원한 심판이 "유월"된다. 또한 어린양의 고기를 먹고 떠날 준비를 했다는 것은(허리띠를 매고 급히 먹으라고 했음) 믿은 이후에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고 누려 힘을 얻는 생활이 되어야 함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재정하신것은 이스라엘민족이 에굽을 용이하게 탈출토록 목적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유월절을 통해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그리스도를 누리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출애굽기는 유월절에 대해 아주 상세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즉, 구약에서 상세히 묘사하는 그리스도에 대해 신약을 살고 있는 우리는 마찬가지로 아주 상세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알아야 할뿐 아니라, 섬세한 방식으로 그분을 누려야 한다.
유월절의 실재이신 그리스도(온일생동안 적용해야 할 절기)
베드로전서 1장 20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창세전에 아셨다고 한다. 즉 창세전부터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계셨고, 우리의 구속을 성취하시고, 우리로 그분을 먹고 힘을 내게 하셨으며, 먼훗날 새 예루살렘에도 계신다는 것이다. 그분은 새신자만을 위해 계시지 않고 우리가 지속적으로 먹고 누릴수 있도록 하신다. 창세전부터 계시록 까지 유월절의 공과는 영원한 것이다. 유월절은 무교절의 첫날이며, 유월절포함 7일간은 무교절로 누룩없는 떡을 먹는 기간이다. 즉 7일간의 기간은 그리스도인의 평생을 뜻하며, 그 첫날인 유월절 구속받은 이후, 그분을 먹고, 또한 누룩없는 떡이신 그리스도를 평생 먹으며 지내는 것을 뜻한다.
구약의 유월절의 대치인 신약의 만찬상
사복음서에 나타난 주님이 잡히시기 전날 저녁, 즉 그분이 재정하신 만찬상은 이제 유월절의 예표가 끝나고, 그 실재이신 그리스도로 전환됨을 보여준다. 주님은 이 실행을 주님이 다시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되기를 원하셨다. 이 상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그분을 먹고 마시는 실행이다. 곧 이것은 유월절의 성취이자, 유월절의 실재이다. 그분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참여하기 위하여 계신다. 우리는 단지 형식적으로 그분을 기념해서는 안되며, 그분을 실재적으로 먹고 마시고 누려야 한다.
2015년 2월 20일 금요일
마가복음 14:43~15:15
마가복음 14:27~14:42
마가복음 14:12~14:26
마가복음 14:01~14:11
우리는 13장에서 주님이 그분의 죽음을 위해 제자들을 준비하셨다는 것을 보았다. 그분은 14장에서도 이 준비를 계속했다. 주님의 준비는 하나님의 경륜이 어떻게 새 사람을 산출할 것인가를 계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새 사람의 출생은 산고의 고난을 요구한다.
마가복음 14장에서 주님은 그들의 사랑을 누리심으로 계속하여 제자들을 준비하셨다. 깨끗케 된 문두잉들로 이루어진 집에 들어가면서 그분은 잔치와 아울러 기름 부음을 누리셨다. 잔치는 내적인 만족의 문제이며 기름 부음은 달콤한 향기로 주님께 문언가를 부어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다니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 주님은 만족하셨으며 기름 부음 받으셨다. 그분은 하나님이 아닌 그분을 사랑하는 자 중의 하나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
베다니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 주님은 모든 것을 대치하셨다.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들 안에, 그들 주변에 그분 외에 아무것도 어떤 사람도 갖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오직 이 놀라운 인격, 그들에게 모든것 되신 분만 있었다.
우리는 14장 1절부터 11절에서 교회 생활의 축소판을 갖는다는 것을 지적했다. 특별히 우리는 만유를 포함한 대치이신 그리스도를 취하는 체험의 축소판을 갖는다. 그러므로 이 축소판으로 묘사된 교회 생활에서 우리는 우리의 대치이신 그리스도를 갖는다. 교회 생활 안에 있는 우리는 그분에 의해 께끗케 된 문둥이들이며 우리 마음 안에는 그분만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 안에 , 우리 주위에 우리와 함께하는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분을 모든 것으로 취한다.
노예구주를 따르는 자들 중 하나가 그분께 그녀의 사랑을 최고로 표현하는 동안 다른 자는 그분을 배신하려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그분을 귀히 여겼으며, 동시에 다른 사람은 그분을 넘겨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가복음 13:01~37
지난 천 구백여 년 동안 두 가지 일이 계속되어 왔는데, 이는 복음전파와 핍박이었다. 이러한 일들이 끝나지 않는 것은 주님의 주권이다. 역대로 주님의 신실한 자들은 어떤 대가, 심지어는 그들의 목숨도 불사하고 복음을 전파했다. 한편 옛 사람과 그 사회와 문화로 된 옛 창조를 점령하고 있는 사탄은 대대적인 핍박을 감행했다.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사탄의 반대는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그 결과는 사탄이나 세상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궁극적인 결과는 새사람의 완전한 분만이다.
새 사람의 출생을 위한 긴 과정 후에 주 예수는 성도들이 휴거될 때에 새 사람을 영접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이것은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휴거가 있을 것이며 이 휴거가 새 사람의 분만을 마무리할 것임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보고 마가복음 13장을 다시 읽는다면 우리는 말씀으로부터 신선한 빛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장에서 주님은 그분을 친밀하게 따르는 자들을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이러한 이해 안으로 이끌고 계셨다.
마가복음 11:27~12:44
하나님게 있어서의 의(義)란?
자연히 우리의 속 존재는 투명해지고 맑아지며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된다.
즉시 우리는 노력 없이도 주님의 생각을 알게되며 그분의 뜻과 일에 관하여 분명한 이해를 갖게된다.
그럴때 우리가 행하는 것이 주님의 생각과 뜻을 따르게 된다. 이것이 의이다.
안식일을 지키는것과 금식의 내재적 의미
이사야 55:1~3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들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혼이 살리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영원토록 그분 안에서 안식할 수 있기 위하여, 그리스도에 의해 해고되고 대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의 일을 멈추고, 우리의 의도를 그치며, 우리가 해고되고 대치됨을 뜻한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결과 우리가 살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안에 사시는 것이다.(갈 2:20)
성경에 따른 금식의 참된 의미는 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해 입맛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금식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식욕만을 가지며 그리스도 외의 어떤 것도 먹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일하고 먹는 일에 바쁘기 때문에, 마음안에 그리스도를 위한 어떤 여지나 존재 안에
그리스도를 위한 어떤 역량을 갖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따라서 그들은 모두 쉬어야 하고, 안식일을 지켜야 하며, 금식해야 한다.
안식하고 금식함으로써 우리는 과정을 거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모든 것에 참여할 수 있다.
총체적으로, 그분의 존재와 그분께서 성취하신 것은 다만 신성한 물이며, 이 신성한 물은 바로 우리가 마시고 누리기 위한 완결되신 영이다.
안식일을 지키는것 (이사야 58장)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행함을 멈추고 그리스도외의 그 어떤것에 대해서도 입맛을 갖지 않는 이 한가지 공과를 배우기 원하신다.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로 대치되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누려야한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목적이다.
안식일을 지키는것은 우리자신을 멈추는 것이다. 안식일에 금식하는것은 기존에 자신이 먹던 많은 음식들(텔레비전, 스포츠, 음악, 잡지, 세상적 오락들)
을 멈추고, 그리스도 즉 하나님자신만을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사는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는 그리스도 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이것이 바로 참된 안식일의 의미이다..
지하층단열재설치시 주의사항(콘크리트방수한계)
방사능치료시설설계시 차폐 콘크리트제염설계
2015년 2월 16일 월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classic travel]-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 바흐(bach)와 헨델(handel)(하)
스무명의 자녀를 둔 바흐 / 평생 독신으로 지낸 헨델
바흐는 두번결혼하여 총 20명의 자녀를 두었다. 첫번째 부인은 7명의 자녀를 낳고, 결혼 13년차에 세상을 떠났다. 두번째 아내는 전 부인의 자녀 7명에 추가로 13명의 자녀를 낳고 그들 모두를 훌륭하게 돌보면서도 남편의 악보정리까지 해 냈다. 스무명의 자녀가있는 왁자지껄한 집안분위기속에서도 바흐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쳐 대부분이 훌륭한 음악가가 되었다. 그중 막내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는 '런던의 바흐'라고 불릴정도로 명성을 떨쳤다.헨델은 한군데 정착하는걸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