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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9일 목요일

사람의 죽음에 관한 성경말씀 [죽은 믿는 이들을 위한 소망-위로의 말]- Words of comfort at Funeral / 安慰的话在葬礼

가끔 지인의 장례식장에 들를때마다 그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할지 모를때가 있다. 만일 그가 믿지 않는 이라면, 사실 그들을 위로할 뚜렷한 말이 없고 단지 그들을 많이 도와주면 된다. 하지만 믿는이의 죽음에 있어서는 다르다. 성경이 믿는이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보도록 하자.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18절
[죽은 믿는 이들을 위한 소망]

13 형제님들, 우리는 여러분이 잠자고 있는 이들에 관해 알지 못하여, 소망 없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4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잠든 이들을 예수님과 함게 데리고 오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15 우리가 주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이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잠든 이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할 것입니다.
16 왜냐하면 주님께서 큰 명령 소리와 천사장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직접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인데,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부활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7 그 후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게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십시오.


위의 말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죽은 믿는이들은 반드시 부활할 것이고 그들은 주님을 살아서 살아있는 우리보다 먼저 주님을 만날 것이다. 물론 지인을 잃은 슬픔을 주님외에 누가 위로할수 있겠냐마는, 믿는이들인 우리는 적어도 성경에 나와있는 말씀을 의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죽은이들은 소멸된 것이 아니라, 잠시 잠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그 순간, 무덤이 열리고 많은 믿는이들이 부활한 사건이 사복음서에 있다. 지인의 죽음은 슬픈일이지만, 우린 언젠가 다시 그들을 살아서 만날 것이다.

2015년 2월 20일 금요일

마가복음 14:43~15:15

성경모임 추구자료 (6)
2011. 10. 21(금)
교재: 성경(회복역) / 진도: 마가복음 14:43~15:15
[개요]

   IV. 하나님의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한 노예-구주의 죽음과 부활(14:43-16:18)
    A. 그분의 죽음(14:43-15:47)
      1. 붙잡히심(14:43-52)
      2. 재판받으심(14:53-15:15)
        a. 유대인들을 대표하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14:53-72)
        b. 이방인을 대표하는 로마 총독에게 (15:1-15)


인자  

우리는 주 예수께서 거짓 고소를 받고 있는 동안에 잠잠하셨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러나 그분의 인격에 관해 그리스도 곧 찬송받을 자의 아들이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막14:62). 주님은 찬송을 받을 자의 아들, 즉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질문을 받았으나 자신을 인자로 언급하셨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이 땅에서 뿐 아니라 부활하신 후 하늘에서 하나님 오른편에서도(행7:56), 심지어 구름을 타고 그분이 다시 돌아오실 때에도 인자이시다.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주님은 사람이 되셔야 했다. 사람이 없이는 하나님의 목적이 이 땅에서 수행될 수 없다.

죽음의 과정을 통과함  

14장에서 주 예수님이 사람들의 손에서 심판을 통과하고 계시는 동안 베드로는 실패했다. 그의 실패에서 그는 주님의 죽음에 대한 체험을 통과했다. 주님을 친밀하게 따르는 모든 자들도 역시 그분의 죽음 안으로 이끌려졌다.
우리는 베드로의 실패로 인해 주 예수님이 그와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아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힘이었으며, 이러한 십자가에 못 박힘은 주님의 죽음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리스도의 죽음안으로 이끌려질 필요가 있었다. 이는 그가 너무도 천연적이기 때문이었다. 담대한 그는 항상 앞장을 섰다. 분명히 이런 사람은 못 박힐 필요가 있었으며 사실 베드로는 못 박힌 것이었다. 비록 그가 당시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그는 주님의 죽음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의심할 바 없이 나중에 베드로는 주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한 후 자신이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주 예수님은 승리에 찬 방식으로 죽음에 들어가셨으나 베드로는 실패하는 방식으로 죽음에 들어갔다. 이 실패는 베드로의 천연적인 존재를 드러냈으며 그것을 처리받을 수 있게했다.



주 예수님만이 죽음의 과정을 통과하신 유일한 분이 아니다. 베드로로 대표된 우리 모두가 주 예수님과 함께 이 과정을 통과했다. 당신은 자신을 베드로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는 드러나 심판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힐 필요가 있는 베드로들이다.